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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3-24 09:50
주기율과 주기율표 [periodic law and table]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9,236  

주기율과 주기율표 [periodic law and table]

주기율은 원소의 화학적 성질이 원소의 일정한 순서(대략 원자량이 증가하는 순서)에 따라 주기적으로 변화한다는 법칙을 말하며, 주기율표는 이것을 표로 나타낸 것.
19세기 중반에 드미트리 I. 멘델레예프가 이러한 사실을 발견했으며, 1920년대에 주기율에서 원소의 나열순서는 각 원소의 원자번호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이 원자번호는 원자핵의 양전하를 전자단위로 나타낸 정수값이다. 그 후에 원자나 분자의 전자구조로 주기율을 설명하려는 여러 노력으로 인해 주기율의 가치는 더욱 커졌으며, 이 법칙이 단지 그당시에 알려진 원소들 사이의 관계만을 나타내던 때인 20세기 초보다 오늘날 더 많이 쓰이고 있다.

[개요]

19세기 초에 분석화학(서로 다른 화학물질을 구별하는 기술)의 급속한 발달과 함께 여러 원소와 화합물의 물리적·화학적 성질에 관한 커다란 지식체계가 형성되었다. 화학적 지식에 관한 분류가 급속하게 증가됨에 따라 분류할 필요가 생겼는데 이는 화학에 관한 체계적 저술뿐만 아니라, 한 세대의 화학자에게서 다음 세대의 화학자에게 화학을 살아 있는 과학으로 전수하는 수단인 실험기술이 화학적 지식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데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원소들보다는 화합물 사이의 관련성이 더 쉽게 밝혀졌으며, 이 때문에 원소의 분류는 화합물의 분류보다 몇 년이나 뒤쳐졌다. 사실상 화합물의 분류체계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 이후 거의 반세기 동안이나 원소의 분류에 관한 화학자들의 일반적인 합의가 없었다.

1817년에 J. W. 되버라이너는 스트론튬의 원자량이 칼슘과 바륨의 중간 정도라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몇년 후 할로겐인 염소·브롬·요오드와 알칼리 금속인 리튬·나트륨·칼륨에도 이러한 경향이 있음을 알아냈다(→ 3가원소). 1827~58년 J.-B.-A.뒤마, L. 그멜린, E. 렌센, 페텐코퍼, J. P. 루크 등은 이와 유사한 관계가 3가지 이상의 원소에도 성립한다는 사실을 밝혀내어 되버라이너의 제안을 확장시켰다. 그들은 플루오르를 할로겐에 포함시켰고 알칼리 토금속에 마그네슘을 추가했으며 산소·황·셀렌·텔루르를 하나의 족으로, 질소·인·비소·안티몬·비스무트를 또다른 하나의 족으로 분류했다. 후에 원소의 원자량을 산술함수로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한 시도들이 있었다. 1862년에 A.-E.-B. 드 샹쿠르투아스는 1858년에 발표된 스타니슬라오 카니차로 체계에 따른 새로운 원자량 값을 토대로 원소를 분류하고자 했으며, 대략적인 산소의 원자량인 16단위의 원주를 갖는 원통 표면에 원자량을 표시했다. 여기서 생기는 나선에 의해 관련된 원소들은 원통 위에서 또다른 점의 위아래로 대응되는 점에 의해 가까이 놓이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그는 "원소의 성질은 숫자의 성질이다"라고 제안했는데 이는 현대의 지식에 비추어 보아도 탁월한 예측이다.


[원소의 분류]
몇 년 후인 1864년에 J. A. R. 뉴런즈는 원자량이 증가하는 순서대로 원소를 분류하는 체계를 제안했다. 그는 각 원소에 차례대로 서수를 붙이고 그당시 알려져 있던 처음의 7가지 원소(수소·리튬·베릴륨·붕소·탄소·질소·산소)와 성질이 비슷한 것을 기준으로 각 원소를 7개의 족으로 나누었다. 이런 관계는 음계의 7단계와 유사하기 때문에 옥타브 법칙이라고 했다. 이후 원소의 성질과 원자량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원자가(원소가 형성할 수 있는 단일결합의 수)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1869년 드미트리 멘델레예프가 "원자량 순으로 나열된 원소들은 그 성질이 주기적으로 변한다"는 주기율을 제안했다. 마이어도 독자적으로 유사한 결론에 도달했지만 그의 논문은 멘델레예프의 논문 이후에 발표되었다.


[최초의 주기율표]
1869년에 발표된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는 17열로 이루어져 있었다. 칼륨부터 브롬, 루비듐에서 요오드까지의 두 주기는 거의 채워져 있었으며(그림2는 비활성 기체로 주기를 나눈 주기율표이며, 그림3은 장주기형 주기율표임), 그 앞에는 각각 7개의 원소(리튬에서 플루오르, 나트륨에서 염소)에 의해 부분적으로 채워진 두 주기가 있고 그 뒤에는 미완성인 세 주기가 있었다. 1871년에 멘델레예프는 17족 주기율표의 개정판을 발표했는데 주된 변화는 17개 원소의 위치를 바로잡은 것이었다. 또한 로타르 마이어와 멘델레예프는 8열로 이루어진 주기율표도 제안했는데 이는 각 장주기를 7개의 원소로 된 주기로 분리시키고, 8번째 족에는 중간의 세 원소(예를 들어 철·코발트·니켈로 멘델레예프는 구리를 Ⅰ족에 놓지 않고 여기에 포함시켰음)를 놓고 다시 7개의 원소로 된 2번째 주기를 나열한 것이었다. 7개의 원소로 이루어진 이 두 주기는 나중에 족의 기호인 로마 숫자 뒤에 'a'와 'b'를 붙여 구별했다. 1894, 1895년에 레일리와 윌리엄 램지가 비활성 기체인 헬륨·네온·아르곤·크립톤·크세논·라돈을 발견하면서 멘델레예프와 여러 사람들은 이들을 주기율표에 추가시키기 위해 새로운 0족을 제안했다. 0, Ⅰ, Ⅱ,……,Ⅷ족으로 된 단주기형 주기율표(그림1)가 일반화되었으며 1930년경까지 널리 쓰였다. T. 베일리의 초기 모형(1882)을 바탕으로 1895년에 J. 톰슨은 새로운 주기율표를 고안했다. 이것은 1922년에 닐스 보어에 의해 원자의 전자구조를 사용해서 설명되었다. 이 주기율표(그림2)는 비활성 기체를 기준으로 주기가 점차 길어지는 형태를 띠고 있다. 즉 이 표는 2개의 원소로 된 주기를 시작으로 8개의 원소로 된 두 주기가 있고 그 뒤에는 18개의 원소로 된 두 주기, 32개의 원소로 된 주기가 하나 있으며 마지막으로 미완성의 주기가 있다. 각 주기의 원소는 다음 주기에 있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원소와 연결선으로 이어져 있다. 이 주기율표의 최대 단점은 32개의 원소로 된 주기를 나타내야 하기 때문에 공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과 특성이 유사한 원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단점들을 잘 절충한 것은 그림3에서처럼 14개의 란탄족 원소와 14개의 악티늄족 원소를 생략하여 32개의 원소로 된 주기를 18열로 줄이고 이들은 주기율표 아래쪽에 따로 2행을 만들어 나열한 것이다(→ 희토류금속).


[다른 형태의 주기율표]
다른 형태의 주기율표가 때때로 제안되었다. 이들 중 초기의 것으로 1905년 A. 베르너가 고안한 것은 단주기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이들이 장주기에서 그들과 특성이 가장 유사한 원소들 위에 오도록 양끝 쪽으로 배열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 때문에 베일리의 주기율표에서 볼 수 있는 주기를 잇는 다중연결선은 생략되었다. 또한 이 형태의 주기율표에서는 란탄족 원소와 악티늄족 원소를 별도의 표로 옮겨서 크게 단순화했다.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이런 형태의 주기율표(그림4)가 가장 널리 쓰이게 되었다.


[새로운 원소의 발견]
1871년에 멘델레예프가 17개의 원소를 그들의 원자량으로부터 알 수 있는 위치에서 새로운 위치로 이동함으로써 이들의 특성이 다른 원소들의 특성과 상관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 성공하면서 주기율의 가치가 더욱 커졌다. 이러한 변화에 의해 그 이전에 받아들여지던 원자량 중에서 몇몇은 작은 오차가 생겼고 또다른 몇몇은 오차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원자량으로 사용한 결합량(일정한 무게의 표준물질과 결합하는 원소의 무게)의 배수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멘델레예프는 그때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원소인 에카붕소·에카알루미늄·에카규소 등의 존재와 그들의 여러 가지 성질을 예측했다. 이들은 각각 스칸듐·갈륨·게르마늄으로 확인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헬륨과 아르곤을 발견한 후에 주기율에 의해 네온·크립톤·크세논·라돈의 존재도 예측할 수 있었다. 또한 보어는 주기율표에 빠져 있는 원소인 원소 72가 주기율표상에서의 위치로 볼 때 희토류 원소보다는 지르코늄과 그 성질이 유사할 것이라고 지적했는데 이로부터 1922년 G. 드 헤베시와 D. 코스터가 지르코늄 광석을 조사하여 미지의 원소를 발견하고 이를 하프늄이라 이름붙였다. 원자량을 다시 결정하여 주기율표를 수정했지만 1871년에 멘델레예프와 로타르 마이어의 주기율표에서 몇몇 원소들은 그 특성으로 볼 때 원자량의 순서와는 다른 위치에 놓여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따라서 아르곤과 칼륨, 코발트와 니켈, 텔루르와 요오드 쌍에서 앞쪽의 원소의 원자량은 더 크지만 주기율표상에서 뒤쪽의 원소보다 앞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어려움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은 원자의 구조가 더 잘 이해되고 난 다음에야 얻을 수 있었다.

1910년경에 무거운 원자의 핵에 의한 알파(α) 입자의 산란에 관한 러더퍼드의 실험으로 원자핵의 전하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전자의 전하에 대한 원자핵 전하의 비는 원자량의 반 정도임이 밝혀졌다. 1911년에 A. 반 덴 브룩은 이 양이 주기율표에서의 원소의 원자번호와 같다고 주장했으며, 이후 뉴런즈로부터 주기율표상에서의 위치에 따라 원소에 번호를 붙이는 것이 관례로 되었다. 1913년에 H. G. J. 모즐리가 여러 원소들의 특징적인 X선 스펙트럼선의 파장을 측정하여 그 파장이 주기율표상에서의 원소의 일련번호와 같은 원자번호에 규칙적으로 의존함을 보임으로써 이 주장은 훌륭히 입증되었다. 이제는 주기율표에서 원소의 위치에 관한 어떠한 불확실성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원자번호 1~107의 모든 원소가 현재 알려져 있으며 108번 이상의 새로운 원소들도 핵반응을 통해 합성될 것이다. 원소의 정확한 원자량이 그 원소의 주기율표상의 위치에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은 각 원소의 동위원소(원자번호는 같으나 원자량이 다른 원자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원소의 동위원소들의 화학적 성질은 본질적으로 같기 때문에 원자량이 다르긴 하지만 주기율표에서 같은 위치를 차지한다.


[주기율의 설명]
주기계에 대한 세부적인 이해는 1913년에 보어의 연구로부터 시작된 스펙트럼 및 원자의 전자구조에 대한 양자이론과 함께 발달되었다. 중요한 발전 단계를 보면 1916년 W. 윌슨과 A. 좀머펠드에 의한 고전적인 양자이론의 일반적 법칙의 공식화, 1925년 W. 파울리에 의한 배타 원리의 발견, G.E. 울렌벡과 S. 호우트스미트에 의한 전자 스핀의 발견, 같은 해 W. 하이젠베르크와 E. 슈뢰딩거에 의한 양자역학의 전개 등이다. 1916년에 G. N. 루이스의 공유 전자쌍에 관한 가정으로부터 시작된 원자가 전자이론과 분자구조 이론의 발달도 주기율을 설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